일기♣

잠시 머물다 간 작은 생명이야기

cogitosum-thing 2021. 8. 1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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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

 

오늘은 
턱시도를 입은 기적이가 잠시 머물다 떠난 날

작은 생명을 기억하기 위해 
조금 끄적여 보려고 한다

 

 

 

 

어제저녁
교통사고를 당해서 

전봇대 아래
겨우 색색거리며 숨만 붙어있는 아기 고양이를
태봉이와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그냥 두 눈 질끈 감고 무시를 했더라면 
이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작고 여린 생명이 길바닥에서 색색거리는 게
눈앞에 아른거려 그게 안되더라..

 

 

 


수의사님은 여린 팔에 혈관을 찾아
수차례 주사를 넣고 응급조치를 해주셨지만 
큰 가망은 없을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선택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혼란스러웠다

길고양이를 병원으로 데려온 것에도 책임이 따른다는 게 실감이 났고
생명에 대한 무게감이 갑자기 크게 느껴졌다

 

 

 


내가 섣불리 안락사를 시키는 게 맞을까
생사는 신의 영역이라 혹여나 살 수 있는 가능성이 1%라도 있을지도 모른다며 

생각할 시간을 주신단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지 말라고 그러신 건지..)

 

 

 


태봉이와 아기 고양이를 안고서 한참을 동물병원에 앉아있었다 
그동안 약이 들었는지 호흡이 안정적이고 손발을 꿈틀대며 여린 신음을 하는 고양이를 보며
1%의 기적을 바라며 운을 하늘에 맡겨보기로 했다

 

 



엑스레이로 보니 골절 같은 외상은 없고 초음파를 하니 속도 생각보다 많이 다치진 않았는데
무엇보다 현재 손쓸 방법이 없어 수의사님도 일단 데려가서 하루 경과를 지켜보자고 하셨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잘 묻어주기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고양이를 안고 나왔다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며 이름을 기적이라고 지었다
아직도 품에 안고 오면서 꼼지락대던 작은 생명의 여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춥지 않게 담요로 감싸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카메라에 하나 둘 담아보았다

사진이라도 남기지 않는다면 

그 작은 생명이 세상에 왔다 갔다는 걸 아무도 모를 것 같아서

 

 



우리 집에는 봉봉이가 있어
태봉이가 기적이의 보호자가 되어 
곁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 태봉이가 펑펑 울면서
고양이가 떠났다고 전화가 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작은 생명이 가여워서
함께 펑펑 울었다

그리고 그 길로 뒷산으로 가
기적이를 손수건에 곱게 싸서
묻어주었다

태봉이는 기적이가 점점 회복되어서 성묘가 되는 것 까지 상상을 했다고 한다

짧고 강한 하루였다
여린 생명이 길바닥에서 생을 마감하지 않게
신이 우리를 그곳으로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나라로 떠나기 전에
잠시라도 따뜻하게 머물렀다 갈 수 있게

 

 

 




그리고 기적이를 떠나보낸 날
또 한 번 잔잔하게 감동적인 일이 생겼는데

태봉이가 평소에 걸렸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던
나이키 드로우에 당첨이 된 것

기적이가 병원비보다 더한 선물을 주고 떠났다며
작별 선물을 잘 간직하기로 했다

소소하지만 
나도 이전에 응모했던 이벤트에 당첨이 되었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지만
고양이의 보은이 정말 있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어
하루 내내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두서없이 글을 끄적였지만..

잠시 머물다간 작은 기적이의 목소리가

이따금 구슬프게 들려와 마음이 저린 느낌이 든다


2달 남짓된 어린 생명이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게 뛰어놀았으면 하는 바램을 하며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오래오래 기억할게 

기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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